근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한 조선의 현실은 참혹했다. 조선은 나름 독립국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힘없는 나라는 자신들의 주권을 지킬 수없었다. 결국, 청나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조선에 대한 침탈을 가속화했고 을사늑약과 한일합방 조약을 강제하며 조선 병합이라는 목적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이에 조선 곳곳에서는 의병들이 일어나 이에 저항했고 수많은 인사들이 죽음으로 이에 반대했다. 조선의 왕이었던 고종 역시 헤이그 밀사를 급파하는 등 일제의 조선 병합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려 했다. 하지만 그 노력을 모두 물거품이 됐고 조선의 식민지가 되는 비운을 피할 수 없었다. 이후 일제의 강압 통치에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은 한계를 보였다. 독립운동의 열기가 식어갈 즈음 1919년, 고종 황제의 갑작스러운 승하와 대대적인 추모 열기는 독립운동에 대한 열기를 다시 뜨겁게 했다. 독립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3.1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조선의 독립의지를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독립운동 역시 보다 조직적으로 전개됐고 해외로까지 그 영역을 넓힐 수 있게 됐다. 독립운동의 양상 역시 교육계몽에서부터 무장투쟁까지 다양해졌다.
특히, 만주를 중심으로 한 독립군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마침 일제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독립군은 일제와 만주에서 맞서 싸웠다.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독립에 대한 의지로 열의로 이를 극복했다.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의 빛나는 승리도 있었다. 이와 동시에 또 하나의 무장독립단체가 차별화된 방법으로 일제에 맞섰다. 그 단체의 이름은 의열단이었다.
의열단은 1919년 김원봉을 단장으로 하는 비밀 결사단체로 조직됐다. 의열단은 공약 10조와 5파괴, 7가살이의 명확한 목표와 체계화된 강령을 중심으로 요인 암살과 관공서 등에 대한 폭탄 투척 등으로 보다 직접적으로 적극적인 방법을 무장 독립 투쟁을 전개했다. 특히, 일제 강압 통치의 상징인 경찰서를 상대로 한 의거는 일제에 큰 위협이 됐다. 1923년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과 일본 경찰과의 치열한 교전, 그리고 장렬한 최후는 1919년 3.1 운동의 실패 이후 위축됐던 독립운동 열기를 다시 일깨우는 일이었다.
영화 밀정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조선 총독부를 비롯한 조선 각지의 일제 관공서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 계획은 거사 직전 내부자의 밀고로 무산됐지만,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일이었다. 만약 그 거사가 실행에 옮겨졌다면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일제는 이를 막기 위해 치열한 첩보전을 전개했고 이를 막는데 성공했다. 그만큼 의열단이 일제에 큰 위협을 되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이런 실패에도 의열단은 굴하지 않았다. 의열단은 김상옥 의사의 의거를 시작으로 관공서 파괴 활동과 요인 암살을 지속적으로 추진했고 그 조직을 더 키우고 강화했다. 민족의 지도자인 신채호, 김구 등의 인물이 의열단의 고문으로 그들과 함께했고 일제와 대치하는 중국의 지도자 장제스가 그들을 후원할 정도로 그들의 항일 투쟁은 빛났다.
하지만 그들의 투쟁 방향은 1920년 후반으로 가면서 이념적으로 좌익 성향으로 크게 기울었다. 애초 민족주의를 표방하며 시작한 그들의 투쟁은 공산주의 사상이 접목되면서 계급투쟁의 성격을 보였다. 이는 해방 이후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선 남한에서 들의 역할을 크게 조명하지 못하는 원인이 됐다. 특히, 의열단 단장이었던 김원봉은 해방 후 남한에서 북한으로 월북을 했고 이후 북한에서 정부 주요 요직을 역임했다. 무엇보다 6.25 전쟁 당시 남침의 주역이었다는 점은 의열단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더 키웠다. 김원봉이 이후 북한 김일성 정권에 의해 숙청되는 비운을 맞이하긴 했지만, 고위직을 역임한 월북 인사라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결국, 의열단의 활동은 우리 역사 책에서 항일 무장투쟁 단체 정도로 잠깐 언급되었을 뿐이었다. 남북의 대치하는 상황에서 공산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그들의 사상이니 각종 강령들을 일반에 소개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의열단의 존재는 희미하게 남아있어야 했다. 이 의열단이 다시 대두된 것은 영화의 소재로 다뤄지면서부터였다. 영화 암살을 시작으로 최근 개봉한 밀정은 의열단의 활동을 소재로 하고 있다. 밀정은 실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더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화적인 상상과 오락적인 요소가 가미되긴 했지만, 대중들은 기존 알고 있던 독립운동과 다른 마치 첩보전을 방불케하는 의열단의 모습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영화의 흥행과 연결이 됐다. 의열단은 다른 첫 영화 암살의 성공 이후 의열단이라는 소재는 영화 밀정으로 이어졌고 밀정 역시 흥행의 가능성이 높이고 있다.
물론, 영화 속의 의열단의 활동이 모두 사실이라 하기는 어렵다. 영화는 영화일 뿐일 수도 있다. 그들의 이념적 지향점과 지나치게 급진적인 성향은 분명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들의 활동이 미화되어서도 곤란하다. 영화의 소재로 재미적인 요소로만 의열단을 평가하는 것 또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중요한 건 목숨을 걸고 일제에 항거했던 의열단의 활동마저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의열단은 일제에 대한 독립 운동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우리 역사에 있어서 의열단의 존재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열린 평가와 함께 재조명이 이루어질 필요는 있다.
사진, 글 : 지후니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