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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50주년 조용필, 반세기 뛰어넘는 또 다른 시작을 기대하며








우리 대중음악사를 대표하는 인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단연 조용필이다. 수많은 가수와 음악인들이 우리 역사와 함께했지만, 세대를 아우르는 인물로서는 조용필이 으뜸이다. 여러 가수들이 국민가수의 칭호는 받았지만, 조용필은 가왕으로 통칭되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드물다. 

그만큼 조용필의 발자취는 우리 현대 대중음악의 역사 그 자체였다. 그런 조용필이 2018년 데뷔 50주년 콘서트로 돌아왔다. 그의 50주년 콘서트를 시작하는 잠실 메인스타디움 공연은 온라인 예매 사이트가 오픈된 지 얼마 안 돼 5만여 석이 전석 매진되는 놀라운 장면을 연출했다. 조용필 공연의 티켓 파워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가 2017년 대외 활동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온 일이다. 아마도 50주년이라는 상징성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용필은 데뷔 이후 주류 음악가로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다. 조용필은 트로트에서부터 락과 클래식, 국악 등 다양한 장르를 모두 자신만의 색깔로 해석하고 완성했다. 이로 인해 조용필은 전 세대에서 사랑받는 가수이나 음악가가 될 수 있었다. 

1980년대는 그의 최전성기였다. 조용필은 당시로는 파격적인 사운드의 음악으로 대중에게 다가왔다. 여전히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는 조용필의 "단발머리" 의 "뿅뿅뽕" 하는 신디사이즈 리듬은 지금 들어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조용필은 이 "단발머리가" 가 수록된 정규 1집 앨범을 시작으로 최고 가수의 자리에 올랐고 부와 명예를 함께 얻었다. 조용필은 인기에 안주하지 않고 발표하는 앨범마다 변화를 시도했고 자신의 음악색을 뚜렷하게 했다. 









1980년대 신군부로 대표되는 독재와 억압, 권위주의 시대였다. 모든 것이 획일화되고 표현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인정받지 못하는 시절이었다. 대중가요는 그 시대에 대중들에게는 일종의 탈출구였다. 조용필은 권위주의 시대에 대중들이 주변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존재였다. 특히, 1980년대 조용필은 젊은 층에게서도 큰 사랑을 받았고 현재 오빠부대의 원조가 되기도 했다. 조용필은 인기는 텔레비전 쇼 프로에서 항상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가수가 그였고 수많은 차트 1위 수상과 연말 시상식의 대상 수상자로서 이름을 올리게 했다. 

하지만 조용필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았다. 1990년대 들어 조용필은 스스로 변화를 모색했다. 그는 연말 시상식 불참을 선언한데 이어 방송 출연 횟수를 줄였다. 대중가수가 미디어 노출을 줄인다는 건 큰 모험이었지만, 조용필은 대중과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했다. 그 방식은 공연이었다. 조용필은 자신만의 음악을 마음껏 대중들과 공유할 수 있는 그만의 공연으로 대중과 만났다. 대신 미디어에서 멀어진 탓에 그의 전성기가 이렇게 저물어 간다는 시선도 함께 감수해야 했다. 

조용필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필의 색이 짙은 앨범을 꾸준히 발표하면서 조용필 만의 공연을 완성시켜나갔다. 그 과정에서 그의 음악은 더 깊이있어지고 고급스러워졌다. 조용필의 공연은 나날이 진화했다. 하지만 미디어 노출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그의 이러한 시도는 크게 조명 받지 못했다. 발표하는 앨범 역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대신 그를 사랑하는 팬들의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이 그를 지탱했다. 조용필은 대중에 영합하는 가수에서 팬들을 이끌어 가는 음악가로 변화를 거듭했다. 조용필은 패들은 이런 그에게 큰 지지와 성원을 보냈지만, 대중들과 멀어지는 그의 모습에는 안타까움을 못내 감출 수 없었다. 실제 조용필의 존재는 젊은 층에서는 잊혀져갔다. 2000년대도 넘어오면서 주류 음악은 아이돌 가수들이 주도했다. 조용필은 자신의 자리를 지켰지만, 미디어의 관심에는 멀어졌다. 조용필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그는 과거의 인물이 되었다.  

조용필이 새롭게 조명된 건 2013년 발표된 그의 19집 앨범이 음악성과 함께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면서였다. 조용필은 19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이전과 달리 인터넷 등을 활용해 대중들과 소통했다. 방송 출연은 여전히 없었지만, 다양해진 소통의 창구는 그를 다시 대중들 앞으로 이끌었다. 여기에 젊은 감각의 진보적인 앨범 수록곡, 바운스와 핼로 등의 노래는 전 세대에 사랑받는 곡으로 자리했고 조용필은 일종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각종 가유 순위 차트에서 그의 노래는 상위권을 점유했고 연말 시상식에서도 조용필은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19집 앨범은 그해 최고 인기 앨범이었다. 가왕의 귀환이라는 말이 딱 맞는 2013년이었다. 그를 몰랐던 젊은 층들로 그의 음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조용필은 그가 왜 최고인지를 입증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조용필은 데뷔 5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한 해를 맞이했다. 그의 50주년 콘서트는 홍보가 많지 않았음에도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의 새로운 20집 앨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벌써부터 그의 새로운 앨범은 19집을 능가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1950년 생으로 나이 70을 바라보는 조용필이지만, 그의 음악은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고 있다. 

그의 데뷔 50주년 첫 콘서트는 5월에 시작되지만, 그의 올해 첫 무대는 북한에서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측 예술단의 평창 올림픽 기간 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북한에 방문하는 남측 예술단에 그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조용필은 2003년 북한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한 경험이 있다. 당시 조용필은 그의 히트곡과 함께 남. 북이 모두 공함할 수 있는 선곡으로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번에는 단독 콘서트는 아니지만, 뜻깊은 일에 그는 다시 동참했다. 4월 초 북한 주민들은 데뷔 50주년을 맞이한 조용필의 2018년 첫 공연을 보게 됐다.

조용필은 언제가 우리 곁에 있어다. 그의 음악은 항상 진화했고 지금은 크게 활성화된 공연 문화를 선도했다.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았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팬들의 설득하고 그를 따라오도록 했다. 19집 앨범을 통해서는 그가 현재 진행형의 가수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데뷔 50주년은 그에게 과거를 돌아보는 것 이상의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앞으로 계속될 조용필의 음악세계가 기대되고 궁금해진다. 

사진, 글 : 지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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