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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임진왜란 1592, 1회] 조선의 마지막 보루 수군, 그리고 이순신






우리 역사 드라마에서 중요한 소재로 자주 활용되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새로 선을 보였다. 극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팩추얼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한 드라마 임진왜란 1592는 한중 합작 드라마라는 점에서 기존 드라마가 큰 차이를 보인다. 5부작으로 드라마가 다소 짧은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1회부터 3회는 우리나라에서 4,5회는 중국 측 제작으로 임진왜란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 1회가 9월 3일 방영됐다. 1, 2회는 주로 이순신으로 대표하는 조선 수군의 활약상을 주 내용을 담을 것을 예고했다. 1회 역시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 좌수영의 이야기가 그 중심이었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가 중간중간 언급됐다. 드라마의 전개는 예고대로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드라마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다큐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순신의 영웅담보다는 그와 함께 싸운 이름 없는 이들의 모습도 상세히 조명했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1회는 임진왜란의 발발과 초기 전황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됐다. 분열된 일본을 통일한 권력자 토요토미의 대륙 정벌 야망에서 비롯된 임진왜란은 15만의 대군이 바다를 건너 조선을 침공하면서 시작됐다. 우리가 알고 있던 대로 일본과의 전면전에 대한 대비가 없없었던 조선은 순식간에 방어선이 뚫렸고 일본군은 큰 저항 없인 조선의 도성은 한양으로 진군했다. 이에 조선의 임금 선조는 도성의 백성들의 원성을 뒤로하고 피난길에 올랐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지만, 왕이 개전 조치 항전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자신의 안위를 먼저 살폈다는 점은 조선군은 물론이고 백성들의 사기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파천은 일본군의 전략에 혼선을 불러왔다. 애초 도성을 빠른 시일 내 장악하고 조선의 임금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려 했던 일본이었다. 그 일본군을 지휘하는 토요토미는 조선의 항복을 받아낸 이후 이를 발판으로 명나라까지 진출하려 했다. 이를 위해 일본군은 보급을 최소한으로 하고 조선을 침공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전쟁이 길어지면서  조선 내륙 깊숙이 들어온 그들은 보급에 어려움이 커져다.  

일본군은 조선의 왕인 선조를 추격하는 한편. 부족한 물자 보급을 메우기 위해  호남을 제외한 조선의 온 국토를 유린하며 노략질을 일삼았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의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 역사상 가장 큰 비극의 순간이었다. 백성들의 고통이 극에 달했지만, 조선 조정은 대응책을 내놓지 못 했다. 그나마 평양을 방어하던 임진강 전선마저 쉽게 뚫리면서 내륙의 전황은 더 어려워졌다. 

전세를 역전시킬 승전보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등장한 이가 이순신이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 발발을 얼마 안 남겨둔 시점에 전라 좌수사로 부임하여 함선을 건조하고 군사들의 양성하며 나름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급격히 기운 초기 전황은 그가 이끄는 전라좌수영 군사들의 사기에도 악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함께 맞서 싸워야 항 경상도 지역 수군이 쉽게 무너지면서 전라좌수영의 부담이 커져다. 일각에서는 전쟁에 대한 회의론이 일기도 했다. 

이순신은 이런 분위기를 일소하고 병사들을 독려했다. 아울러 일본 수군에 맞설 새로운 전략 마련에 부심했다. 그 중심에는 우리가 거북선이라 알고 있는 귀선의 존재가 있었다. 귀선은 기존 판옥선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일본군의 주력 화기인 조총에 대비하고 그 위해 철갑을 씌워 적의 침투를 막는 일종의 돌격선이었다. 귀선은 전투 발생 시 최 일선에서 적의 공격을 받아내고 적진 깊숙이 침투해 적을 교란하는 역할을 했다. 귀선의 어떤 역할을 할지 여부는 조선 수군의 사활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조선 수군은 일본의 조총 사거리 밖에서 원거리 타격으로 적선을 파괴하는 것이 주 전략이었다. 하지만 바다의 움직임 속에 흔들리는 배에서 먼 거리에 있는 적선에 정확한 포격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선제 타격에 실패하고 재 장전하기까지의 시간은 적선이 우리 수군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전에 맞추기 어려웠다. 일본 수군의 주 전술은 상대방배에 올라 육박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이는 조선 수군에 불리한 싸움이이었다. 이순신은 이를 피하고 아군의 피해를 줄이면서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했다. 그만큼 귀서의 존재는 소중했다. 개전 초기 이순신이 귀선을 전투에 투입하지 않은 것도 더 완벽한 상태로 귀선을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귀선이 투입된 해전은 사천해전이었다. 이 전투에서 조선 수군의 귀선은 일본군에 큰 혼란을 주었다. 조총은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귀선은 돌격선으로 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조선 수군은 귀선이 만들어놓은 틈을 따라 따라 일자진을 형성했고 단거리 포격으로 적선을 궤멸시켰다. 이를 통해 조선 수군은 화포의 적중률을 높였고 적들의 반격을 차단했다. 결과는 대승이었다. 이 전투에서 이순신은 총상을 입었지만, 조선 수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이순신이 하고자 했던 승리였다. 

이 승리로 조선 수군은 귀선의 위력을 확인했고 향후 전투에서 큰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반대로 일본군은 예상치 못한 조선 수군의 반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귀선이라는 새로운 무기는 일본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됐다. 귀선의 등장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무패 신화 역시 본격화됐다. 조선 수군의 강력한 저항을 일본의 해로를 통한 보급을 차단하는 것으로 이는 일본군에게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조선으로서는 마침내 전세를 반전시킬 계기를 수군의 선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일본으로서는 그리고 토요토미로서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 조선 수군을 꺾어야 하는 과제가 생긴 셈이었다. 

이렇게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간 이순신이었지만. 그는 항상 인간적 고뇌를 해야 했다. 전쟁 과정에서 고통받는 백성을 삶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군을 피해 전라 좌수영으로 모여드는 백성들은 큰 부담이었지만, 이순신은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런 현실은 분명 그에게는 큰 고통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조선 수군의 승전 이면에는 넉넉하지 않은 지원에도 자신들의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한 병사들의 노고가 있었다. 임진왜란 1592 1회에서는 이런 백성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세세히 보여주었다. 이순신 장군의 신화는 그와 그를 따르는 이들이 함께 만든 것이었다. 이순신과 이름 모를 병사들, 그들을 돕는 백성들의 고군분투가 남은 회에서 얼마나 더 생생하게 팩추얼 드라마답게  그려질지 궁금해진다. 

사진, 글 : 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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