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드라마가 자주 방영되면서 고려말 조선 초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승자의 기록인 역사에서 새로운 왕조를 세운 이성계가 그 중심에 있고 조선을 건국한 세력들이 그 역사의 중심에 있지만, 마지막까지 고려를 지키려 했던 인물들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중 고려의 마지막 충신, 최영과 정몽주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최영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부정과 비리, 사리사욕과 거리가 멀었다. 그는 평생 전장을 누비는 무장으로 살았을 뿐이었다. 고려말 계속된 왜구의 침입, 홍건적의 난, 몽골의 침입 때마다 최영은 최전선에서 맞서 싸웠다.
최영의 계속된 승전은 그를 당시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백성들에게 희망으로 다가왔다. 그는 전쟁영웅이었고 지금으로 말하면 많은 지지를 받는 잠재적 최고 실력자였다. 당시 권문세족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과 신진 사대부, 그리고 사병을 다수 거느린 무장세력에 휘둘려 유명무실했던 고려 왕실은 최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주변의 여건 변화는 최영을 정치가로 바꿔갔다.
최영은 고려 왕실의 수호자였다. 이성계와 힘을 합쳐 당시 전횡을 일삼던 최고 실력자 이인임과 그 일파를 제거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가장 연륜있는 정치인으로서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최영의 힘만으로 쓰러져가는 고려를 다시 세우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미 새로운 왕조를 새우려는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일어나고 있었고 이를 제어할 힘이 고려에는 없었다. 이런 내부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최영은 북방에 눈을 돌렸다. 당시 고려는 원나라를 몰아내고 새롭게 중원을 통일한 명나라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명나라를 원나라 잔존 세력과 고려가 손잡는 것을 경계했고 이미 원나라의 억압을 경험했던 고려는 명나라의 내정 간섭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영은 당시 힘의 공백 상태에 있던 요동정벌을 계획하고 이를 적극추진했다. 이를 통해 고려의 자존감을 되찾고 당시 많은 사병들을 거느리며 고려에 위협이 되고 있던 정치 세력에도 타격을 주려는 의도도 깔려있었다. 1388년 최영의 주도로 요동 정벌군은 이성계와 조민수의 지휘 아래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최영이 추진한 요동정벌은 고려 왕조의 멸망을 더 재촉하는 일이 되었다. 애초 여러 이유를 들어 요동정벌 불가론을 펼쳤던 이성계를 위화도에서 정벌군의 회군을 결정했고 이는 우왕을 폐위하는 군사 정변으로 이어졌다. 최영 역시 화를 피할 수 없었다.
최영은 끝까지 반란군에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반란군에 붙잡힌 최영을 얼마안가 참형을 당했고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최영의 죽음은 고려 왕조를 떠받치던 마지막 보루가 사라진 것을 의미했다. 최영의 죽음에 이어 온건 신진사대부 세력을 이끌던 정몽주마저 죽음을 당하자 온건 정치세력은 붕괴를 피할 수 없었다. 결국, 고려는 마지막 왕 공양왕이 이성계에 그 지위를 넘기며 수백년 왕조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이렇게 최영은 쓰러져가는 고려왕조의 마지막 충신이었지만, 역사의 주요한 흐름에서는 승자가 아닌 패자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영의 강한 절개와 용맹함, 청렴결백한 삶은 그를 백성들 사이에서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그의 사후 전국 곳곳에 그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 건립되었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만약 최영이 권력을 탐했고 단순히 권력 다툼에서 패한 인물이었다면 이런 칭송을 들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가 끝까지 지키려 했던 고려는 멸망의 비운을 피하지 못했지만, 최영은 긴 세월이 지나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이런 최영의 흔적 속에서 고려의 역사는 함께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편으로는 최영이 요동정벌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아니면 정치력을 발휘해 우호세력을 많이 만들었다면 고려왕조를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요동정벌은 조선이 건국한 이후 정도전에 의해 다시 추진되었던 만큼 허황된 꿈이 아니었다. 정치적으로도 이성계와 왕조 교체를 꿈꾸는 강경파 신진사대부에 장악된 조정에서 최영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다.
많은 이들은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 교체가 필연적인 결과였다 하고 있다. 이미 썩을 대로 썩은 고려의 현실이 새로운 변화를 불러왔다는 것이 그 골자다. 하지만 그런 고려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던 이들이 많았다. 조선 왕조 건국 이후에도 조선에 협력하지 않은 지식인들이 상당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은 과연 그들의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고리타분한 이들이었는지 과연 고려가 망할 수 밖에 없는 왕조였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아울러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길 선택한 최영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진, 글 : 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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