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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살아남는 자가 승자임을 보여준 성공한 2인자 하륜







2014년 1월에서 6월에 거쳐 방영됐던 KBS 대하 드라마 정도전은 통해 고려말, 조선 초의 역사적 흐름과 각종 사건, 그 안에서 펼쳐진 인물들의 지략 대결을 볼 수 있었다. 이전 왕이 중심인 드라마와 달리 정도전은 조선개국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지만, 왕권과 신권의 대립과정에서 피의 숙청을 당한 정도전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도전은 고려만 조선 초기 역사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지만, 이방원과의 권력투쟁에서 패한 이후 역사의 뒤편에 머물러 있어야 했던 비운의 인물이었다. 그가 기틀을 세운 조선이 수백 년을 이어갔지만, 그는 언급조차 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대신 고려를 지키기 위해 그와 대립했던 정몽주가 추앙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의 복권은 조선말 고종 때가서야 이루어졌다.
드라마 정도전은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대해 재평가를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다. 물론 드라마 속 정도전의 모습이 모두 진실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정도전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고 아직 우리의 삶에 뿌리 내려있는 유학의 이념이 구현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인 인물이라는 점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한 편에 정도전과 대조되는 인물이 눈길을 끌었다. 하륜​이 그 인물이다. 하륜은 정도전과 같이 고려말 대학자 이색의 제자였다. 신흥 정치 세력인 신진사대부였지만, 걸어간 길은 많이 달랐다. 고려말 고려 귀족세력의 중심이었던 권문세가의 수장 이인임의 수하에 있었다. 권문세가들과 날카롭게 대립하던 신진사대부와 정치적 입장을 함께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그는 권력의 중심에 위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주목받는 것은 시류에 따른 능수능란한 처세와 대응력에 있다. 그는 이인임의 실각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지만, 얼마 안 가 재기에 성공했다. 이인인을 대신해 권력을 잡은 최영의 요동정벌 계획에 반대하며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 이성계,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 사대부세력과 입장을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들의 왕조를 바꾸려는 역성 혁명론에는 거리를 두었다. 정몽주가 중심이 되어 고려를 지키려했던 온건파 사대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행보를 했다. 강경파와 온건파 사대부의 다툼에 말려들지 않으면서 그는 때를 기다렸다. 마침내 조선이 건국되었을 때 그는 새 나라에서 다시 한 번 관직을 얻고 기회를 잡았다.
하륜은 성리학뿐만 아니라 역학과 풍수에도 조회가 깊어 조선의 한양 천도에도 일정 영향을 미쳤고 조선 초 정도전이 중심이 되어 시행되는 나라 만들기에 일정 역할을 담당했다. 그의 존재감이 빛난 건 이방원과의 만남이었다. 강력한 왕권을 주창하던 이방원은 신권 중심의 재상정치를 주장하던 정도전에 밀려 그가 원했던 세자 자리에 오르지 못했고 사병혁파 정책으로 권력기반마저 흔들릴 상황이었다.
하륜은 이방원이 정도전과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하고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책사로서 큰 역할을 했다. 이는 또 다른 2인자 생활의 시작을 의미했다. 이방원, 즉 조선 3대 왕 태종의 강력한 지원 속에 조정의 요직에 머물며 왕권 강화 정책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또한, 치열한 권력 다툼이 이어지는 조선초 상황에서 천수를 누리는 행운까지 잡을 수 있었다.
태종은 왕위에 오른 이후 왕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친.인척을 비롯한 공신들에 대해 처절한 숙청을 단행했다. 하륜 역시 공신으로 그 대상이 될 수 있었지만, 하륜은 태종의 의중을 잘 읽어냈고 절대적인 신임 속에 소용돌이 속에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즉, 태풍이 몰아치는 와중에 그는 태풍의 눈에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그는 조선 초 정치가로 권력자로 그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 조선 건국의 중심에 있었던 정도전의 그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다가 죽임을 당한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스스로 1인자가 되기보다는 2인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면서 모나지 않은 2인자로 견제의 눈길을 피했고 권력자에게 필요한 인물로 자신을 만들었다. 그가 각종 비리에 연루되 탄핵을 받았지만, 태종은 그를 비호할 정도였다. 그는 태종의 의중을 잘 알 고 있는 몇 안되는 공신이었고 태종은 그를 버릴 수 없었다.


이렇게 하륜은 성공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남았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임을 고려하면 하륜은 항상 승자의 편에 있었다. 살아남는 자가 진정한 승자임을 보여준 하륜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그보다는 역사의 패배자였던 정도전을 더 많이 기억한다. 그가 남긴 유산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었다.
정도전은 그 삶을 다하지 못했지만, 그의 정신과 신념은 곳곳의 유적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하륜의 족적은 기록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정치적으로 승리한 하륜이었지만, 역사의 승자라고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당시의 삶에서 그는 조선의 공신이고 위인이었지만, 지금의 하륜은 그의 남다른 처세와 전략가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이렇게 영원한 2인자로 각인된 그의 삶이 역사적으로 성공적이었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륜이 성공한 정치인이고 2인자였다는 점이다. 그의 삶은 치열한 경쟁에 있는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 적용해도 될 정도로 치밀하고 전략적이었다. 정치적 타협을 포기하고 죽음으로 자신을 몰아넣은 정도전보다는 지혜로운 삶을 산 인물이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하륜과 정도전의 비교되는 삶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 수 있는 대조의 좋은 예가 될지도 모른다.


사진, 글 : 지후니(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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