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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고려 우왕의 이유있는 무능함






고려 역사에서 우왕은 비운의 왕이다. 그는 출생 때부터 축출당한 실력자 신력자 신돈과 연결된 정통성 시비에 시달려야 했다. 선왕이 공민왕의 개혁이 실패하는 과정에 득세한 무장세력과 권문세가, 신진사대부가 대립하는 정치상황에서 왕의 권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여기에 왜구로 대표되는 계속된 외침과 소수의 귀족에 독점된 경제구조 탓에 나날이 피폐해지는 국민들의 불만까지 그의 몫이었다.
한 마디로 쇠약해져 가는 고려의 이름뿐인 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왕으로서 그가 할 일이 없었다. 우왕으로서는 당장 왕실을 지키고 자신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를 위해 우왕이 선택할 길은 최고 실력자와 손을 잡는 일이었다. 우왕은 불가 10살의 나이에 선왕인 공민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그가 왕권을 다질 시간도 없었고 우호세력도 없었다.
우왕으로서는 그를 왕위로 올린 이인임과 밀월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와 사돈 관계를 맺고 그의 힘을 발판삼아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이인임의 자신의 관직을 독점하고 그 측근들이 부정부패를 일삼아도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이인임에 절대 권력을 허락하면서 그의 그늘 밑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했다.





하지만 한 사람에 독점된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인임 측근세력의 부정과 부패, 비리는 극에 달했다. 민생의 어려움은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 이인임 세력의 장기간 독재는 신진사대부와 신흥 무장세력의 불만으로 이어졌다. 장기집권한 이인임에 대한 불만이 밑에서부터 위에까지 팽배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를 제거하려는 움직임은 필연적이었다.
이는 큰 정변으로 이어졌다. 신진 사대부 세력의 지지를 얻은 이성계, 최영의 무장 세력은 무력으로 이인임 일파를 제거하고 관련자들을 숙청했다. 이인임과 연결된 상당수 관리들이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피의 숙청이었고 떠난 이들의 빈자리는 이인임 제거에 힘을 합친 무장세력과 신진사대부의 몫이었다.
​이런 정치적 격변기는 고려 왕실이 다시 권능을 되찾을 기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우왕은 이런 상황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성계와 최영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우왕으로서는 무력한 왕의 힘을 절감해야 했다. 생존을 위한 선택이 불가피했다. 우왕은 그를 지켜줄 정치 파트너로 최영을 선택했다.
무장이었지만, 고려에 대한 충성심 높고 가장 연륜이 있는 최영은 왕위를 도모할 인물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고 이미 연로한 최영이 오랜 기간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계산이 있었을 수도 있다. 우왕은 사돈관계까지 맺으며 이인임에 이어 최영에 의탁해 정치적 격변기의 폭풍을 피하고 왕권을 강화할 기회로 삼으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 우왕은 최영의 요동정벌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이를 함께 주도했다. 조정의 최고 실력자 최영이 추진하는 일이긴 했지만, 요동 정벌이 성공한다면 이를 통해 고려의 자존감을 높일 기회이기도 했다. 이는 왕실의 위상 강화와 연결되는 일이었다. 우왕으로서는 이 순간만큼은 고려의 왕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왕과 최영의 요동정벌은 이성계가 주도한 위화도 회군으로 한순간의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우왕은 요동정벌군에 최영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 큰 실수였다. 노령의 최영을 배려한 것일 수도 있지만, 우왕은 자신의 최측근을 곁에 두려 했던 것이 더 강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요동정벌 반대론자들이 다른 마음을 품을 기회를 주었다.
마침 여름 장마철에 명나라 국경지대에 발이 묶인 고려 정벌군은 애초 요동정벌에 부정적이었던 이성계와 함께 출전한 조민수의 지휘 아래 도성으로 회군했고 우왕과 최영의 폐위와 실각을 가져왔다. 최영은 곧바로 사사되었고 우왕은 이곳저곳 유배지를 전전하다 죽임을 당하며 생을 마감해야 했다. 한때 그의 아들 창왕이 즉위하며 반전의 계기도 있었지만, 얼마 안 가 창왕마저 축출되면서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우왕은 고려말 격동의 시기에 발생한 거대한 물결을 이겨내지 못했다.
역사서에서는 그를 무능한 왕으로 기록한 것이 많고 심지어 그의 출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정통성마저 부정하기도 했다. 이는 조선을 건국한 세력에 의해 더 심화되었다. 그의 모친이 신돈을 가까이서 보좌하던 여인이었다는 점이 이런 의심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우왕이 신돈의 자식이라는 객관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강경파 사대부에 의해 뜬 소문이 더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어찌보면 패망한 나라 왕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우왕은 고려사에서 큰 발자취를 남기지 못했다. 당시 고려는 쇠약해져 있었고 국가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소수의 귀족들이 정치와 경제, 군권을 쥐고 흔드는 왜곡된 현실은 부흥의 근본마저 흔들었다. 이런 시기에 즉위한 왕에게 태평성대를 열어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을지도 모른다.  ​
우왕은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했고 왕실을 지키기 위해 나름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며 고군분투했다. 물론,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냉정하기만 하다. 그 역시 역사의 패자이기에 써야 했던 멍에를 피할 수 없었다. 


사진, 글 : 지후니(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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