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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하이테크 산업 기술 유출이 아픔을 더하는 임진왜란







최근 영화 명량 등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배경이 되는 임진왜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592년 일군의 침입으로 발발한 임진왜란은 이후 소강상태를 거쳐 1597년 2차 침공은 정유재란까지 더해 1598년 종전된 전쟁이다. 이 전쟁을 통해 나라 전반에 걸쳐 회복 불능의 피해를 입었다.  

수많은 인명이 목숨을 잃었고 일본군에 납치돼 일본으로 끌려가야 했다. 당시 일본으로 납치된 조선인들의 상당수는 당시 일본에 진출해 있던 유럽 상인 등에게 노예로 팔리는 굴욕을 역사를 겪어야 했다. 이런 인적 피해와 함께 조선은 궁궐은 물론, 나라 곳곳에 자리하고 있던 유적들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여기에 더해 각종 서책들도 약탈되거나 불타 사라졌다. 

국가를 통치하고 관리하는데 기본이 되는 법과 제도는 물론, 각종 지식이 담긴 다양한 서적들도 이에 포함됐다. 인적 자원관리를 위한 각종 기록들마저 소실된 탓에 전란 이후 조선은 건국 이후 국가의 근간이 되었던 신분제 사회에 변화가 불가피했다. 이런 피해와 함께 조선의 가장 큰 문제는 산업적 기반의 붕괴였다. 

조선은 그 산업의 중심에 농업이 있었다. 농업 생산을 근간으로 나라의 세금을 거두고 나라 살림을 운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농토의 관리가 그만큼 중요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조선의 농토 중 과반 이상이 파괴됐다. 산업 생산의 근간이 무너지면서 농업 생산량의 감소가 불가피했다. 전후 복구를 위한 인적자원마저 큰 손실을 입은 상황에서 복구도 지연됐다.





당연히 나라의 살림을 궁핍해졌다. 조선 조정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재물을 받고 관직을 내리는 조치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후 복귀는 계속 지연됐고 집권층에서는 이를 해소할 능력을 보이지 못 했다. 임진왜란전 극심한 대립을 보인 붕당정치는 상대 세력을 인정치 않는 극단적 양상을 띠었다. 관직이 경제력과 직결되는 양반 사회에서 경제력의 그간이 되는 농토가 축소되면서 정치 세력 간 대립이 더 심화되는 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이런 집권층의 무능력을 민심을 떠나게 했다. 이미 전란 와중에 일반 국민들은 자신들을 버리고 몽진을 떠난 왕과 신료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럼에도 의병활동을 통해 나라는 지키는 것에 일조하기도 했지만, 전란 후 돌아온 것은 의병장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과 더 궁핍한 생활이었다. 이렇게 산업적 기반 붕괴와 계층 간 갈등의 심화는 세종대왕 때부터 이렇다 할 전란 없이 평화기를 유지하던 조선을 암흑 속으로 몰아넣는 중요한 원인이었다.  

극심한 피해를 입은 조선과 달리 일본은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임진왜란을 통해 나라를 더 발전시킬 계기를 마련했다. 전장이 자신들의 본토가 아닌 탓에 군대를 이끌던 무장 세력들 외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 무장 세력들의 약화로 중앙집권적 통치가 기반이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다.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으로부터 약탈한 각종 유물과 서적은 그들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기반이 됐다. 당시 조선으로부터 유입된 성리학을 바탕으로 일본은 통치 이념을 새롭게 하고 문화 수준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이에 더해 일본은 조선으로부터 첨단 산업 기술까지 얻어왔다.  


일본 역사학자 중 일부가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일본은 임진왜란 과정에서 그 기술을 흡수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기술을 지난 도공들을 대거 납치했고 국보급 도자기들도 대거 약탈했다. 그들의 조선 도자기 사랑이 가져온 결과였지만, 당시 도자기 기술은 기술적 역량이 집중된 가마의 운영과 도자기를 미를 더하게 하는 문화적 수준이 집약된 지금으로 말하면 하이테크 산업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집착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본은 조선에서 납치한 도공들에 좋은 대우를 하며 가마를 만들고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선 도공들을 상당수는 일본에 정착해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다. 당시 도자기 기술이 미약했던 일본은 이후 자체적으로 도자기를 생산하게 됐고 이미 활성화된 서양과의 교역에 있어 중요 품목 중 하나로 그들의 도자기를 활용했다. 또한 그들의 의식주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 수도 있었다. 

도자기 생산 가마를 보유한 실력자들은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일본이 도자기를 통해 경제적 발전을 이루는 사이 조선의 도자기 기술은 시간이 지날수록 쇠퇴를 거듭했다. 첨단 산업의 명암은 장기적으로 양국의 경제적 문화적 측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첨단 산업 기술은 국가의 중요한 부로 이해되고 그 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기술 유출에 따른 피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관련 기술자들이 국가를 불문하고 제1 스카우트 대상이 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현실과 대입해도 임진왜란 당시 조선 도자기 기술의 유출은 뼈아픈 일이었다. 조선의 역사는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기록이라 하지만 상처뿐인 영광이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 글 : 지후니(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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