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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고려 대몽 항쟁의 마지막 불꽃, 삼별초





고려 역사에 있어 몽고와의 전쟁은 사상 유례없는 장기간의 투쟁이었다. 당시 아시아는 전체는 물론이고 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치던 몽고군은 세계 최강의 전력이었다. 그들이 침공한 나라는 예외 없이 굴복당했다. 하지만 고려는 30여 년을 버티며 그들과 맞섰다. 하지만 긴 전쟁으로 인해 일반 백성둘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피폐해졌다. 몽고군의 약탈과 노략질에 전 국토가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파괴되고 소실되는 아픔도 있었다. 

고려는 장기간의 전쟁을 위해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로 옮겼다. 몽고군이 육지에서 세계 최강이지만, 해전에 약하는 점을 이용한 결정이었다. 강화도에 자리한 고려 정부는 대몽 전쟁을 이끌었다. 문제는 강화도 고려 정부가 민생을 외면한 그들만의 삶을 영위했다는 점이었다. 

강화도 고려정부를 이끈 건 최씨 무신 정권 세력이었다. 최충헌을 시작으로 그의 아들러 세습된 최씨 정권은 대의 명분을 앞세워 대몽 전쟁을 주도했지만, 실상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전쟁을 이용했다. 그들은 강화도에 자리를 잡고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다. 그들에 동조하는 집권 세력들도 다르지 않았다. 전 국토가 전쟁에 신음하는 사이에도 강화도에서는 풍악이 울렸다. 그들은 전쟁에 고통받는 백성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부과했고 그들의 호화생활과 권력 기반인 사병을 유지하는 데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군대가 삼별초였다. 삼별초는 애초 최씨 무신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사병조직으로 친위부대였다. 그 역할도 몽고군과의 전쟁보다는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들에 대한 단속과 치안 유지가 주를 이뤘다. 이들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이 클 수밖에 없었다. 무신 정권 기간 이들은 기득권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며 빈곤과는 거리가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씨 정권이 붕괴되고 몽고와이 화친이 성사되면서 삼별초의 위상이 크게 약화됐다. 최씨 정권에 이어 무신 정권을 이끌었던 이들도 하나 둘 제거되면서 유명무실했던 왕권이 강화됐다. 고려 왕은 몽고의 힘을 등에 엎고 그들을 억누르고 있던 무신정권의 흔적들을 지워냈다. 무신정권 유지에 선봉에 있었던 삼별초 역시 그들의 장래가 불투명했다. 

삼별초는 이에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배중손이 중심이 되어 거병한 삼별초는 대규모 병력을 강화에서 남해안의 진도로 옮겨 근거지로 삼고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다. 새로운 왕을 옹립한 삼별초는 진도에 대규모 군사시설과 궁궐을 짓고 또 다른 정부임을 선언했다. 그들의 세력은 남해안은 물론, 호남에까지 이르렀다. 몽과와의 전쟁이후 고려는 2개의 정부가 함께 존재하는 사실상의 내전상태가 됐다. 

비록 삼별초가 무신정권 치하에서 백성들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그들이 주장한 대몽항쟁의 지속이라는 명분은 상당 수 백성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른 지지세를 바탕으로 삼별초는 고려의 남부지방에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삼별초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일본에 독자적인 사신을 파견해 대몽 항쟁을 함께 할 것을 요청하는 등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런 삼별초는 개경으로 환도한 고려정부와 그들과 화친을 맺은 몽고 모두에 상당한 위협이었다. 당연히 고려와 몽고 연합군은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파견했다. 하지만 무신정권 하에서 정예 군대로 양성된 삼별초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특히, 해전에 약한 몽고군은 그들을 상대하기 더 버거웠다. 이에 몽고는 강화를 위한 협상을 제안하는 등 회유책을 펼치기도 했다. 삼별초는 이런 시도를 그들의 전쟁 기반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하지만 강성했던 삼별초 세력은 고려, 몽고 연합군의 기습공격에 급격히 무너졌다. 방심이 문제였다. 고려, 몽고 연합군의 기만술에 솎은 삼별초는 순식간에 방어선이 무너지며 궤멸됐다. 이 과정에서 지도부 대부분이 사망했고 그들의 세력을 급격히 위축됐다. 그 과정에서 일부 삼별초 군은 제주로 근거지를 옮겼고 수년간 항쟁을 지속했지만, 끝내 그 나머지 세력마저 궤멸되며 그 존재가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고려는 몽고에서 원나라로 이름을 바꾼 친원세력이 득세하고 자주성을 상실한채 원나라에 사실상 복속되는 암흑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삼별초의 대몽 항쟁실패는 그 점에서 분명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그들의 태생이 비정상적이었고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항쟁을 시작했다는 점은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지만, 외세의 침략에 끝까지 저항하는 등 고려의 항전 의지를 각인시켰다는 점은 평가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이점에서 삼별초의 항쟁은 몽고에 의한 침략의 역사에서 한 줄기 빛이 되는 사건이었다. TV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에서 삼별초에 대해 다각적으로 분석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앞으로도 삼별초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의 접근이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글 : 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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