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들의 세자 책봉을 통한 후계구도 확립 주장은 선조의 분노를 불러왔다. 선조는 자신의 반대에도 거듭 이를 주장하는 서인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서인들의 움직임은 왕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고 왕권 강화라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도 대립되는 부분이었다. 선조는 서인들의 세자 책봉을 빌미로 더 강력한 정치 세력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
이런 선조의 의중을 읽은 동인의 영수 이산해는 서인의 영수 정철을 탄핵하며 서인들에 대한 대대적 숙청을 주장했다. 선인들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선조는 이를 받아들여 서인들은 조정에서 배제했다. 정철은 사실상 사실상 정계은퇴를 하게 됐고 서인의 지도급 인사인 윤두수, 이항복, 성흔 등도 파직당하며 조정을 떠났다. 다시 조정은 동인들의 장악하게 됐다.
동인들에게는 호재였지만, 이는 동인들의 분할되는 계기가 됐다. 정철을 비롯한 서인들의 처벌 수위를 놓고 강경론을 주장한 영의정 이산해와 온건론을 주장한 좌의정 류성룡이 대립각을 세웠다. 정치적 동반자였던 동인의 중심 세력이었던 두 정승의 대립은 정게 개편을 불러왔다. 이 과정에서 류성룡이 자신의 소신을 꺾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동인은 동인 세력을 이산해를 따르는 기존 동인과 류성룡을 따르는 남인으로 갈라지게 됐다.
조선의 정치 혼란은 일본의 침략에 대한 대비를 더 더디게 했다. 마침 외침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 대비를 주장했던 서인들의 축출되면서 전쟁 대비는 더 지지부진하게 됐다. 이 상황에 류성룡은 전쟁 대비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전부터 일본의 위협을 인지하고 있던 류성용은 하삼도를 살피며 민심을 파악하고 필요한 부분을 점검했다.
그 과정에서 류성룡은 조세, 군역 제도의 부조리함을 깨닫게 되고 민심을 수습하고 전쟁에도 대비할 수 있는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류성용은 조선 중기 이후 대토지를 소유하면서도 세금과 군역을 부담하지 않은 양반들에 대한 징세를 선조에 주장했다. 이를 통해 재정을 확충하고 국방도 튼튼히 할 수 있다고 했다.
양반들로부터 걷어들인 세금으로 군역을 부담하는 일반 국민들에게 녹봉을 지불한다면 세금과 군역 부담으로 삶의 터전을 이탈하는 일반 백성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자발적으로 군역에 참가토록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 일리 있는 주장이었지만, 개혁적인 주장이기도 했다. 기득권 세력들과의 힘겨운 싸움을 선조는 부담스러워했다. 선조는 막연한 낙관론과 현실적인 불가피성을 들어 문제 해결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였다. 류성룡의 시도는 결국, 실행될 수 없었다.
조선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국제 정세도 급변했다. 일본의 토요토미의 강력한 의지로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토요토미는 권력에 위협요소를 점검하는 동시에 빠른 정벌을 위해 측근들을 다그쳤다. 이런 토요토미에 늦게 얻은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성을 잃게 했다. 그는 더 강한 의지로 조선 침략을 추진했다. 조선에게는 점점 위기가 구체화되는 사건이었다.
일본의 움직임을 전혀 인지하고 못하고 있던 조선에 명나라와 관계는 외교적 과제였다. 이미 명나라가 조선의 일본에 대한 통신사 파견을 인지하고 있는 상황은 상국으로 명나라를 모시고 있던 조선에게 큰 악재였다.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는 명나라의 시각을 바꾸지 못한다면 향후 조선에게는 외교는 물론이고 나라 방위에도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조선 조정은 이에 대한 대응에도 대립하며 빠른 대응을 하지 못해다. 결국, 조선 조정은 류성룡의 주장대로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그간의 사정을 소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조정과 임금에 대립하는 흉흉한 민심과 민란과 같은 혼란스러운 상항이 계속되는 남도의 상황은 조선 조정에 또 다른 파란을 일으킬 것을 예고했다. 붕당 이익에만 골몰하는 조정에 성난 민심이 조지화되 반정부 움직음으로 이어진다면 나라의 근간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임진왜란을 얼마 안 남겨둔 시점에도 조선은 내부 문제는 물론이고 외교에도 혼선을 빚으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자신의 힘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류성룡은 안타까운 마음만 가질 뿐이었다. 조선이 대비하지 못하고 내부 단결도 하지 못하는 사이 전쟁 시계의 초침은 점점 더 빠르게 전쟁 발발로 향하고 있다
사진, 글 : 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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